‘유행은 돌고 돈다.’라는 말이 있다. 며칠 전, 웹서핑을 하다가 “1998-2021, 어제 종영한 것 같은 순풍산부인과 패션”이라는 스브스 뉴스를 봤다.[1] 내용은 SBS 시트콤 순풍산부인과가 2000년에 종영했지만 드라마 속 패션 스타일은 지금과 비교해도 전혀 촌스럽지 않다는 것으로, 1998년과 2021년의 패션을 비교하고 있었다. 실제로 패션에 무지한 필자가 보기에도 20년 전 시트콤 속 등장인물들의 패션이 현재 스타일과 비슷하여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신수정
사단법인 유니온센터 이사

기사를 보면서 ‘아… 역시 유행은 돌고 도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다가 한창 진행 중이었던 차별금지법 제정 청원으로 생각이 이어졌다. “차별금지법 제정하자”라는 구호(?)를 처음 들은 것이 2000년대 초반이었는데, 2021년 현재까지 아직도 “차별금지법 제정하자”라는 구호가 들리고 있다. 유행은 돌고 도는데,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자”는 주장은 계속 이어진다.

지난 5월 24일, 동아제약 성차별 면접 피해자가 “국가인권위원회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한 지 15년이 지났으나 아직 차별금지법이 없다. … 헌법상 평등권 실현을 위해 국회가 바로 지금 포괄적 차별금지법‧평등법을 제정해주기를 바란다.”라고 하며 청원 제안서를 작성했다. 국민동의청원은 한 달간 10만 명 이상의 국민들이 동의하면 소관위원회 심사를 거쳐 ‘국민동의청원’으로 공식 채택되고, 이후 정부나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률안처럼 소위원회 심사를 거쳐 본회의에 부의된다.

청원 시작일로부터 3주가 지난 6월 14일,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국민동의청원이 10만 명의 동의를 얻어 국회 소관 상임위에 회부되었다. 국회법에 따라 소관 상임위원회는 회부된 날로부터 최대 150일 안에 국민동의청원의 심사를 마쳐야 한다. 이 기간 안에 법안 심사를 마치면, 올 연말 국회 본회의에 차별금지법이 부의될 수 있다.

청원인이 청원 제안서에서 밝혔듯이, “차별금지법 제정” 주장은 15년째 계속되고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노무현 정부의 국정과제였고, 2006년 당시 국가인권위원회도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한 바 있다. 2007년 10월 2일, 법무부가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에 따라 차별금지법안을 입법예고했지만, ‘성적 지향’에 대한 차별금지 항목을 문제 삼은 보수 기독교 세력의 반발과 ‘학력’, ‘병력’에 의한 차별금지 조항이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막는다’는 재계의 반발에 부딪혔고, 17대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되었다. 2010년 이명박 정부는 정부 차원의 차별금지법 추진을 중단시켰고, 국회에서 노회찬·권영길 의원 등 진보정당 의원들이 다시 차별금지법안 발의를 시도했지만 그 역시 계류하다 또 다시 임기만료로 폐기되었다. 2013년엔 차별금지법을 발의한 김한길‧최원식 의원 등이 각 지역구의 보수 기독교 단체의 반발에 스스로 발의를 철회하기도 했다. 당시에 보수 기독교에서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구국기도회를 했던 것도 기억난다.

보수 기독교의 반대는 2000년대 초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 초기부터 있었다. 2007년 차별금지법 반대운동은 ‘며느리가 남자라니 동성애가 웬 말이냐’라는 전설적인 구호를 남겼다. 2013년의 슬로건은 ‘종북 게이’로 요약된다.[2]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목사가 설교 시간에 동성애를 비판해도 벌금을 내게 된다’ 같은 말들이 유포되었다.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은 원래 노동에서 나온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면, 차별로 인한 해고를 다투는 과정에서 이를 판단할 법적 근거의 필요성이 먼저 제기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보수 기독교가 “차별금지법 반대”에 화력을 집중시키면서 2007년 법무부의 차별금지법 추진에 강하게 반발했던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재계는 2013년 이후 논란에서 사라졌다. 그저 이 대리전을 느긋하게 즐기며 관전할 뿐이다.

2001년 5월 24일 법률 제6481호로 제정된 국가인권위원회법(시행 2001. 11. 25.)은 제30조(위원회의 조사대상) 제2항에서 “평등권침해의 차별행위라 함은 합리적인 이유없이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지역, 출신국가, 출신민족,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상황, 인종,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性的) 지향, 병력(病歷)을 이유로 한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다. 2001년에는 법 규정에 포함되었던 차별사유가 오히려 2006년 이후 계속 논란이 되고 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만 거꾸로 가는 게 아니다. 유행은 돌고 도는데,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자는 인권의 시계는 거꾸로 흐른다. 이제 시계를 제대로 돌려야 할 시기이다.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제정할 수 있을까? 20여년 간 계속된 “차별금지법 제정하자”는 구호를 이제는 더 이상 듣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1] 2021.5.24. 스브스뉴스 블로그(https://blog.naver.com/subusunews/222364140350)

[2] 당시 바른 성문화를 위한 국민연합이 배포헌 동영상 ‘차별금지법의 숨겨진 진실 中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들이여! 북한이 핵으로 도발하고 있는 지금/ 우리가 ‘차별금지법’을 막지 않으면/ 국가보안법이 무력화되어 종북세력에 의해 결국 월남처럼 망하게 될 것이다/ 우리 청소년들은 동성애로 병들어 자살할 것이며, 역차별로 인해 사회적 공감대를 가진 대다수의 국민들이 범죄자가 될 것이다/ 남남 갈등을 일으켜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종북세력에게 휩쓸리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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